최근 포토로그


새로운 미국 국방장관 예정자를 보며

갑자기 위그노의 후손이자 석기시대 전문가 장군님에 대한 글을 써보고 싶어요.

그 분은 정말 상남자셨죠(?)

대왕오징어와 고래버거의 상관관계 역사

현직 생물학자 분께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써요.

우린 하늘과 땅 사이에 일어나는 일들에 항상 놀라고 두려워하죠.

요즘은 신문에 무슨 일이 나던 놀랍지도 않은 상황이니까요.

하지만 바닷속은 어떨까요?


오늘날 크라켄과 리바이어던은 중세나 근대기만큼의 파워는 없지만 

요즘도 간간이 해안에 떠밀려온 정체불명의 바다괴물 이야기가 인터넷 뉴스에 기사로 오르곤 해요.


물론 우린 이 크라켄들의 정체를 알아요. 대왕 오징어죠.

대왕오징어는 배를 집어삼키거나 잠수함을 부수 지도 않아요.

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다른 문제가 있죠...




19세기 초에 150만 마리의 향유고래가 있었다 해요.


지금은 개체 수가 많이 줄었다고 하죠.

고래기름을 엄청나게 채취했구나 하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여기엔 간과된 사실이 하나 있는데.

향유고래의 주 먹이가 대왕 오징어란 거예요.

어쩌다 목격담이 나오는 커다란 오징어가 뭐가 문제냐 하실 수도 있지만

대왕오징어에 대해 우린 잘 몰라요.

심해 2500m~3000m에 사는 애들인데다 화석도 안 남죠.

심지어 개체 숫자도 파악이 안됨.


이제 뭐가 문제인지 눈치채신 분이 있으실지도 모르겠는데. 

이대로면 앞으로 대왕오징어의 개체 수가 폭주할지도 모른다 해요.

150만 마리의 향유고래를 먹여살렸던 대왕오징어의 숫자가 얼마나 될지는 신만이 알 테고, 지금 그 고래는 줄었지만 오징어는 사라졌단 증거가 없어요.


수천 미터 심해까지 내려가서 깽판을 치며 대왕오징어 개체 숫자를 조절해줄 생물은 현재로서는 향유고래가 유일하니까요.


호시탐탐 향유고래를 햄버거로 만들고 싶어 안달이 난 모 섬나라에 공손히 바치는 바에요

(향유고래 포획은 현재 금지이지만 일본은 금지를 풀려 계속 노력중이에요)


프랑스군의 머스킷 연사 전술 역사


근대 전쟁의 본질은 공학이에요.
무질서 속에서 질서를 만들어내는 과정이죠.

머스킷 전쟁의 시대에선 마술사나 골리앗이 아니라 이성으로 무장한 냉혹한 공학자들이 전장을 지배했죠.
5초마다 발사된 탄환의 10%가 명중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요?

북미와 남프랑스, 그리고 이탈리아 북부는 높다란 나무가 우거진 숲을 많이 가지고 있는데 프랑스군은 정밀한 샤를르빌 머스킷과 사격술을 이용한 산악전에 능했어요. 

하지만 그들이 유명한 건 단순히 명중률 때문은 아니었는데 잘 훈련된 프랑스 퓨질리어들은 컨베이어 벨트식 전술을 이용해 적에게 빠른 연사를 가하곤 했죠.

맨 앞에 명사수가 엄폐물을 두고 쏘는 동안 다른 병사들이 장전을 해주는 방법은 삼림지대의 나무나, 요새의 방벽에서 최고의 효율을 발휘했는데 이는 대규모로 운영될시 당시 머스킷으로는 절대 낼 수 없는 위력을 가져다 주었어요.

보통 한차례 일제사격이 지나가면 길면 1분 짧아도 20초의 여유가 생겨 반격을 가할수 있었지만 이 경우엔 네번째줄에서 이미 재장전이 끝나고 새 머스킷이 건네졌죠. 

프렌치 인디언 전쟁의 백미이자 3600명의 프랑스군과 18000명의 영국군이 맞붙은 카리용 전투에선 한 명사수에 7,8명의 장전수가 투입되었어요.

압도적인 군세에도 불구하고 정확하고 빠르게 쏘는 프랑스군의 사격에 영국군은 1000명 전사 1500명 부상 +100명 실종이라는 피해를 입고 참패했죠.
(프랑스군의 피해 100명 전사, 500명 부상, 150명 포로)

메테르니히와 먼로주의 역사

나폴레옹이 무너진 뒤 프랑스인들은 돌아온 왕당파들에 대해 딸의 청혼자들을 두고 고민하는 아버지만큼이나 미심쩍어했어요.
사실이건 비단 프랑스인들 뿐 아니라 유럽 전체에 팽배한 두려움이었죠. 
 
뚱보 왕 루이는 자신의 능력에 비해 과한 야심을 가지고 있었고 영국과 메테르니히가 아니었다면 절대로 왕위를 되찾을만한 인물이 못 되었죠. 

하지만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든 신성동맹의 수장 메테르니히는 전 유럽에 '구시대의 질서'가 자리 잡히게 하겠다 마음먹었고 그대로 실천했어요.

문제는 바다 건너 아메리카에서 혁명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었죠.

나폴레옹전쟁은 남미대륙 전체를 흔들어 놓았는데, 너무도 오랜 세월 동안 황당한 압제에 고통받아온 식민지 사람들은 혁명을 원하고 있었고 
모두가 갈팡질팡하는 동안 프랑스 혁명을 직접 목격햇던 소수의 선구자들이 검을 들고 일어선 거죠.

스페인을 죽입시다. 스페인은 남미의 원수..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미란다와 나리뇨로 대표되는 이들의 이상과 탁월한 능력 앞에 썩은 무 같던 스페인 당국은 맥을 못 추고 허물어졌고 결국 스페인은 빠른속도로 남미에서 쫒겨나기 시작했죠.

메테르니히는 이를 불편하게 지켜보았는데 그는 신성동맹의 일원인 스페인 왕가에 반기를 든 반역 도당들을 힘을 합쳐 진압해야 한다 여겼어요. 

이런 중세적 시대착오에 태클을 건건 바로 미국이었죠.

미영전쟁 이후 빠르지만 착실하게 힘을 키우던 미국은 더 이상 영국의 천방지축 조카가 아니었고.

이미 상당한 국력을 가진  신생미국은 유럽이 자국의 앞마당에 손을 뻗치는 것 자체도 싫었지만, '민주국가'의 맏형으로써 동생들을 야만인들로부터 지켜야 한다는 묘한 사명감 또한 가지고 있었어요.

메테르니히가 유럽의 왕들을 모아 남미의 신생국들을 손봐주고 싶어 한달 걸 깨달은 미국의 먼로 대통령은 1823년 12월 2일 의회에서 그 유명한 먼로 주의를 발표했는데.


"미국은 신성동맹이 아메리카에서 세력을 확장하려 시도한다면, 우리 국가의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는 행위로 간주하여 그런 조치에 단호히 대처하겠다."

= "신성동맹인지 앙시앵레짐 동호회인지 유럽에서 뭘 하든 상관없지만 아메리카에 손을 뻗으면 재미없을 줄 알아라."

이는 대담하고 명백한 경고였어요.

소식은 빠르게 퍼져나가 4주 뒤 영국 신문에 먼로주의의 원문이 게재되었는데.
신실한 왕당파 메테르니히는 당연히 먼로주의를 부정하고 싶어 했지만.

 "먼로주의는 가장 존경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유럽의 제도를 책망하고 비웃는 야비한 선언이다!"





영국의 외무장관 조지 캐닝은 그런 메테르니히에게 자꾸 그렇게 놀다 간 재미없을 거란 주의를 주었죠. (메테르니히의 착각과 다르게 미국은 오스트리아 따위가 어찌할 수있는 국가도 아니었을뿐더러, 영국도 유럽이 아메리카에 손을 대는걸 원치 않았어요.)


"응 아냐"




메테르니히는 상처받은 듯한 얼굴로 캐닝을 설득하려 했지만 (왕당파로써 자신의 순수한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는 듯)

캐닝은 굳세게 빠큐를 날렸어요. (저게 날 바보로 아나)

영국뿐 아니라 유럽내부의 복잡한 상황은 메테르니히가 바다건너 영향을 행사하는걸 불가능하게 만들었고.

결국 신성동맹은 남미 문제에 개입할 수 없었고 남미와 멕시코의 독립에 어떠한 장애물도 되지 못했죠.


겨울같지 않은 겨울

빨리 추워지면 좋겠어요

프랑스와 영국에 대해.

영국인들은 피가 차갑고 쿨하다 

프랑스인들은 피가 뜨겁고 타오른다

프랑스인들이 광장에 모이는 동안 영국인들은 법으로 해결한다.


나는 그 때문에 프랑스를 사랑하지만, 동시에 그 때문에 프랑스는 영국을 이길수 없을 것이다.



1 2 3 4 5 6 7 8 9 10 다음